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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 기억속의 그녀
작성자 : 이재은 작성일 : 2003-10-15 조회수 : 8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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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랐던 시골은 그야말로 고즈넉하고 평화로우며 자그마한 동네였습니다. 재미있게도 그 작은 시골도 동네마다 특징이 있어서 우리 한쪽 옆동네는 깍쟁이들이 많이 살았고 다른쪽 옆동네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화투치는 것을 좋아했는데 교회가 끝나면 늘상 그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동네 아이들은 정말이지 화투를 너무나 잘쳐서 5-6학년때 쯤인가 처음으로 저두 민화투라는 것을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오빠들 말에 아빠가 교육상 좋지 않다며 제가 태어나기 전에 화투를 좋아하는 동네에서 평화로운 이동네로 이사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나즈막한 산이 두면을 감싸고 있고 햇살이 늘 따사로웠으며 동네 옆으로 난 큰 도로는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이 있슴을 달리는 차들이 말해주었죠.동네사람들도 얼마나 부지런하고 성실했는지 자그마한 흉거리는 동네의 큰 수다거리가 되었답니다. 동네 가운데로 마을사람들이 힘을 합해 만들어 놓은 공동 빨래터가 있었는데 그곳은 아이들의 수영장이자 엄마들의 수다터였습니다. 저희 엄마도 늘상 집안의 수도는 내팽개치고 때가 잘지워 진다는 이유로 항상 그곳의 빨래터를 애용하셨는데 가끔씩 심심하면 저도 엄마따라 빨래터로 놀러갔던 기억이 납니다. 세탁수 옆으로 깨끗한 물이 담겨있는 수조가 따로 있었는데 그곳을 빙빙돌며 헤엄치는 물방개며 소금쟁이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곤 했었죠. 아줌마들의 수다가 한창일 때면 빨래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도 커지고 그러다 갑자기 방망이 소리가 작아지면 동네의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오고가곤 했습니다. 하루는 아줌마들이 말씀하시길"누구누구 엄마가 미쳤대. 남편이 다방 마담이랑 바람이 났대나봐. 쯧쯧. 어제 두 동네를 쏘다니더라구. 애들이 불쌍하지."아줌마들이 일제히 긴장하고 놀라워 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심상치 않은일이 일어났슴을 단번에 알수 있었죠. 그리고 그 엄마가 누구더라 한참 떠올렸는데 얼굴이 반들반들하고 기미가 많이 끼어 있었으며 싹싹하고 약간 모자란듯 수더분하던 그녀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웬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며칠 지나 그집에서 굿을 하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네 하는 등등의 잔소문이 떠돌더니 급기야 어느날 불쑥 그녀가 우리집에 나타났습니다. 나는 무서운 마음에 엄마치마를 붙잡고 긴장한 얼굴로 바짝 뒤에 숨었는데 엄마는 뭔가 살피는 눈치를 보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어오라며 한동안 이야기를 했는데 그녀 혼자 떠들고 엄마는 어린애에게 말하듯 호응을 해주며 달래는 듯한 말씀을 하더군요. 그녀의 머리는 헝클어졌으며 기억은 나지 않지만 특별한 이야기도 아닌 어떤 말을 하며 혼자서 웃다가 속상해하다가 굉장히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더니 인사를 꾸벅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엄마는 혀를 몇번 차시더니 다시 하시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개월이 지났나 봅니다. 그녀가 농약을 먹고 죽어버렸다는 소식이 마을을 움찔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막내아들이 제동생과 같은 반이었는데 가끔씩 하교길에 보이는 까무잡잡한 얼굴의 그 아이의 표정은 다른 때와 크게 다름없이 조용하고 특별한 변화가 없는 무표정의 얼굴이었는데 저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관찰하곤 했죠. 그것이 제 기억속에 처음 새겨진 정신과 환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 엄마인 지금, 시골의 대부분 아낙이 그러하듯 남편과 자식을 전부로 알고 사는 여인들에게 남편의 외도는 미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일이었겠다는 이해와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가슴아픈 운명은 차치하고 그녀의 막내아들이 보여주던 그 무표정한 얼굴이 어찌나 떠오르는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연민과 슬픔이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애달픔을 느끼게 합니다. 그녀가 좀더 버텨주었더라면... 그녀의 속내를 보여줄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녀의 자녀들이 굳건하게 잘 자랐길 기도해봅니다.